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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글 쓰는 사람’ ‘여행하는 라디오를 꿈꾸고 그림책을 사랑하는 방송 작가’. ‘열두 번의 체크인’의 저자 김미라를 일컫는 수식어다. 저자는 ‘황인용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시작으로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현재 ‘세상의 모든 음악 전기현입니다’의 원고를 쓰고 있다. 이미 저서도 ‘오늘의 오프닝’ ‘그 말이 내게로 왔다’ 등 여러 권이다.

​그런 그가 이탈리아 시칠리아 여행길에 오른 뒤 엮은 여행기를 책으로 냈다. 저자의 시칠리아 이야기는 재미있다. 카타니아, 노토, 시라쿠사, 모디카, 라구사, 아그리젠토, 팔레르모, 체팔루, 타오르미나, 카스텔몰라, 팔라초 아드리아노. 이탈리아와 인연이 없는 사람이 보기엔 요리의 이름 같기도 한 도시 이름들이 시칠리아 편의 끝에 이르면 어느새 익숙하고 정다운 울림으로 기억된다.

​스무 살에 부산에서 서울로 혼자 올라와 시작한 건 애니메이션 공부였다. 하지만 서울이 싫었다. 내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내가 내가 아닌 곳으로”라고 토해냈다.

​그러다 휴학을 한 뒤 무작정 비행기표를 끊고 독일 베를린으로 떠났다. 스마트폰은커녕 구글 지도도 없던 시절, 2년 가까이 베를린을 시작으로, 프랑스 파리, 스페인 산티아고, 이집트, 인도, 네팔 등 전 세계를 떠돌며 아무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낯선 곳에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저자는 “떠나면 모든 게 새롭고 특별한 일의 연속일 줄 알았는데 결국 삶은 일상의 반복이었다”며 “모든 게 불행인 동시에 행복이었다. 우연이면서 필연이었고, 찰나이면서 영원이었다. 두려움은 경험이 되고 고통은 배움이 되었다”고 여정의 끝에 다다라 깨달음을 얻었다.

일반적인 여행서에서 보듯 어떤 한 도시와 그 도시의 핫플레이스, 먹거리, 감상을 나열한 수준이 아니다. 그 도시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와 역사, 문화, 예술, 풍속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의 시선으로 다가간다. 마치 다큐멘터리인 줄 알고 봤는데 느닷없이 주인공이 등장하는 재미있는 드라마 같은 여행 에피소드들이 한 가득이다.

​시칠리아 여행의 전반에 흐르는 정서는 유쾌함, 홀가분함, 느긋함이 기본이다. 여기에 군데군데 등장하는 ‘시네마 천국’의 아련함이 함께한다. 여행을 많이 한 여행 전문가답게 길 위에서 희박한 확률로 만날 수 있는 운명적인 풍경이나 터무니없는 해프닝과 만나기도 한다. 한적한 길에서 마주친 말 세 마리의 기적적인 장면이나 3열로 주차된 차를 빼내는 시칠리아만의 특별한 방법 등 구석구석 저자만의 시선이 매력적이다.

그렇게 발길이 머무는 곳에서 20권이 넘는 스케치북에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린 이야기를 모았다. 첫 책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의 탄생 배경이다. 여행지를 사진보다 선명하게 포착한 그림과 가장 어두운 날것의 감정까지 담아낸 이 책은 ‘순례길 앓이’를 일으키며 저자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저자는 데뷔작 이후 ‘여백이’ ‘오늘 내가 맘에 든다’ ‘베개는 필요 없어, 네가 있으니까’ 등의 에세이집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다 13년 전 첫 작품을 전면 개정해 내기로 결심했다. 누구나 겪었을 방황의 시기에 어디서든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단단한 응원을 건넨다.

저자는 “이 이야기는 13년 전 나의 이야기다. 돌아보니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 반짝이던 시절, 2년 동안 세계를 떠돌면서 남긴 스물 몇 권의 스케치북을 다시 들여다보며 글과 그림을 다듬었다”며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당신 또한 자신만의 어느 한 시절을 기억하며 어디서든 나 자신으로서 현재를 살아갈 수 있기를(바란다)”고 소개했다.

저자는 여행의 매력으로 ‘여행자의 오해’를 꼽았다. 그는 여행의 추억과 낭만 중 상당 부분이 여행자의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여긴다. 가령 각각 다른 결혼식에서 신부가 화사하게 웃고, 안 웃고를 보고 이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가 이처럼 다양한 각도로 에피소드를 뿜어내는 원동력은 글감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기 때문이다. 소설, 에세이, 전문서적, 기관지 등의 책을 두루 섭렵하고 공연을 보고 여행을 해서 경험을 쌓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인정받고 많은 check here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가이지만 이런 노력 덕분에 해를 거듭할수록 더 감동적인 글이 나올 수 있었다.

​책을 덮으면 에릭 사티가 누구인지, 그의 음악은 어떠했는지, 오랑주리 박물관에 전시된 모네의 수련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싶게끔 만든다. 이 책은 독자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넓히는, 독자 스스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비워놓은 여행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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